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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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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말한다.

본토나 서양에서는 주로 아니메(アニメ)라고 부른다.

2 역사

2.1 일본 제국 시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일본 제국 시대때부터 시작되었다.

태평양 전쟁을 겪고 있었던 당시는《모모타로 바다의 신병》을 비롯한 일본군 홍보물이 대부분이었으나 《거미와 튤립》같은 전쟁색이 없는 작품들도 종종 있었다.

2.2 1950년대, 태동기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재건되기 시작하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시작을 꿈꾸고 있었다.

1956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설립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 시대가 열린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유명 애니메이터 대부분이 여기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은 토에이에서 제작한 중국의 민화를 배경으로 한《백사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애니메이션이다.

2.3 1960년대, TV 애니메이션의 시작

1963년,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철완 아톰》이 방송한다. 일본 최초의 주간 TV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은 평균 시청률 40%라는 대히트를 쳤으며 공상과학물의 유행을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캐릭터 산업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이는 현대 모에 문화의 원점이 된다. 또한 이때부터 시작된 리미티드 기법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철완 아톰을 시작으로 유행한 낮은 제작 단가는 당시 꽤 잘나가던 직업인 애니메이터를 3D 업종으로 만들어버렸다.[1] 또한 애니메이션 업계가 캐릭터 산업에 흡수되버려 그로 인한 상업성은 일본 애니의 주요 비판거리가 되었다.

2.4 1970년대 ~ 1980년대, 아니메의 전성기

일본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일본 애니메이션도 전성기를 맞았다.

70년대에 만들어진《우주전함 야마토》,《기동전사 건담》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어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켰고 애니는 어린이만 본다는 당대의 편견을 깨트렸다. 10대 ~ 20대를 필두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인 오타쿠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

80년대에 들어 거품경제로 일본은 어마어마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내수 시장이 풍족해지자《은하영웅전설》과《AKIRA》같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고퀼리티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품경제가 끝나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하자 이 시절의 일본 애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전성기로 평가받고 있다.

2.4.1 애니메이터 이야기

토에이에 입사하여 두각을 드러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미래소년 코난》,《바람계곡의 나우시카》등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냈으며 당당히 일본 애니메이터의 상징이 되었다. 1985년,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게 되었고《이웃집 토토로》등 일본 애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명작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애니메이터가 한명 더 있다. 바로 토미노 요시유키. 1963년, 무시 프로덕션 입사를 기점으로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 토미노는《용자 라이딘》과《무적초인 점보트3》등 혁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9년, 일본 애니 최고의 명작중 하나인《기동전사 건담》을 만들기에 이른다. 당대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었던 건담은 후배 애니메이터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2.5 1990년대, 과도기

거품경제가 지나고 경제위기가 시작되자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90년대를 기점으로 자신들에게 충성적인 오타쿠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2] 투하트를 시작으로 에로게가 애니화되기 시작된것도 이때.

시장이 위축되자 투자자들은 복수의 스폰서가 돈을 투자하여 투자한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제작 시스템인 제작위원회를 만들었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은 미디어믹스 활성화와 제작비 감소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낳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지나친 상업성과 다양성 감소, 제작환경의 열화등의 원인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모든 애니가 상업주의가 짙었던 건 아니었다. 과도기인 만큼 아직은 작가주의가 대세였고 상업성과 작가주의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던 이 시대의 작품들은 80년대를 잇는 명작들이라 여겨진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들로는 안노 히데아키의《신세기 에반게리온》, 오시이 마모루의《공각기동대》 그리고 마법소녀물의 전설이라 불리는《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이 있다. 특히 에반게리온은 야마토, 건담의 뒤를 잇는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켰고 현대 오타쿠 문화의 상징이 된다.

2.6 2000년대, 예술에서 산업으로

과도기를 거치고 상업주의 시대를 맞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일본 애니는 양적으로 성장을 이루어 낸다. 동시에 미디어믹스 활성화로 일본의 캐릭터 산업은 모에 문화로 대표되는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는 오타쿠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레드오션화 되어 작품의 수가 늘은 대신 퀼리티가 떨어지는 쓰레기들도 그만큼 늘어나기 시작했다. 간간히 명작들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시장의 양극화로 잘 팔리는 작품들은 수만장의 판매고를 올리지만 과거와 달리 1000장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망하는 작품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60년대부터 이어져 오던 상업주의의 심화 및 그 반동으로 애니들의 작품성, 다양성 저하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업성은 오타쿠는 환호하고 대중들에게는 비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에 와서는 양쪽 모두에게 까이고 있는 실정.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코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케이온!, 그리고 샤프트에서 제작한 바케모노가타리가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성공은 라이트노벨 애니화와 심야 애니메이션의 부활이라는 업계 전체의 영향을 이끌어냈고 하루히즘이라는 붐을 일으켰다. 2000년대 후반에 제작된 케이온!은 모에한 캐릭터들을 통해 모에계 일상물의 유행을 일으켰으나[3] 스토리의 부재등 작품성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지적을 받았다.

니시오 이신의 소설인 바케모노가타리는 원작 특유의 난해함과 샤프트의 개성적인 연출이 맞물려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역대 TV 애니메이션 부분 BD 판매량 2위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했고 심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룰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1. 이 일로 데즈카 오사무는 후배들에게 두고두고 까이게 된다.
  2. 가끔 일본 애니의 침체를 오타쿠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데 엄밀히 말해 오타쿠의 잘못은 아니다. 순서를 따지자면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대중들의 소비 위축이 먼저.
  3. 때문에 모에물에 부정적인 사람은 케이온!을 거의 증오 수준으로 싫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