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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김광현에 대한 기대로 SK는 06년 지명에서 동산고 '''[[류현진]]'''을 건너뛰고 포수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지명[* 이전 항목에 06년 얘기 외에 05년에 윤석민을 건너뛰고 최정을 골랐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이는 김광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전혀 아니다. 고교시절 당시 최정은 구속도 괜찮은 탑급 투수였고 [[이영민 타격상]]까지 수상한 고교 최고의 타자로, 투타 모두 윤석민보다 훨씬 뛰어났던 선수였다. 오히려 윤석민이 최정만큼 인정받지 못하던 고교시절 평가를 넘어 예상을 깨고 프로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지, 당시 최정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았는데 SK가 미래의 김광현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최정이 제일 잘해서 뽑은 것. 구단은 처음부터 윤석민 생각을 한적없이 계속 최정을 원했고, 최정의 포지션에 대해서도 입단 이후 투수로 할까 타자로 할까 내부고민이 있었다. 최정 개인도 고민이 있었으나, 프로에서 투수보다는 뛰어난 타격과 강한 어깨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3루수나 유격수 같은 내야수를 원했고 상의끝에 그쪽으로 결정된 것.][* 고교시절만 비교하면 최정은 투타재능이 모두 뛰어나 윤석민, 김광현, 류현진, 이재원 등보다도 기대치가 더 높던 선수다. 반대로 고교시절 이재원 같은 경우는 류현진이랑 프로와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포수 vs 투수지만) 기대치가 비슷했다. 거기에 류현진의 수술경력에 대한 스카우터들의 부상관련 불안감이 있었고 미래 김광현에 대한 생각도 작용했던 것이다.]하기도 했다. 물론 1차지명 당시에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으니, 주전포수 [[박경완]]의 은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포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 ~~[[이재원(야구선수)/2015년|이재원]]도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완전히 차지했기에 이것도 그렇게 후회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건 이재원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무조건'''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리그 최악의 팀에서 연평균 180이닝-평자 2.80-14승을 올려주고 300억까지 주고 떠난 에이스와 비견할 만한 선수가 과연 현 KBO에 있을까? ][* 이전 항목에 최정 얘기가 여전히 있었지만, 최정-윤석민의 문제는 길게 볼때 SK입장에서 땅을 칠 일이 아니다. 최정은 20대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FA이후 30대초중반에도 SK에서 활동하기로 계약했고 데뷔 첫 홈런왕까지 되며 30대에도 여전한 장타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20대 초중반의 맹활약에 비해 20대 후반 FA이전부터 구속저하가 눈에 띄게 되었고 미국에 갔다 온 뒤 이어지는 부상으로 30대부터 마무리를 하거나 선발을 하려다 이내 부상재활을 하는 등 소속팀에서 1군선수로서의 활동이 상당히 적을만큼 부진하다.] 하지만 김광현이 있었기에 SK는 이들을 포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대 속에서 김광현은 07년 계약금 5억원에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게되었다. | 이런 김광현에 대한 기대로 SK는 06년 지명에서 동산고 '''[[류현진]]'''을 건너뛰고 포수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지명[* 이전 항목에 06년 얘기 외에 05년에 윤석민을 건너뛰고 최정을 골랐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이는 김광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전혀 아니다. 고교시절 당시 최정은 구속도 괜찮은 탑급 투수였고 [[이영민 타격상]]까지 수상한 고교 최고의 타자로, 투타 모두 윤석민보다 훨씬 뛰어났던 선수였다. 오히려 윤석민이 최정만큼 인정받지 못하던 고교시절 평가를 넘어 예상을 깨고 프로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지, 당시 최정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았는데 SK가 미래의 김광현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최정이 제일 잘해서 뽑은 것. 구단은 처음부터 윤석민 생각을 한적없이 계속 최정을 원했고, 최정의 포지션에 대해서도 입단 이후 투수로 할까 타자로 할까 내부고민이 있었다. 최정 개인도 고민이 있었으나, 프로에서 투수보다는 뛰어난 타격과 강한 어깨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3루수나 유격수 같은 내야수를 원했고 상의끝에 그쪽으로 결정된 것.][* 고교시절만 비교하면 최정은 투타재능이 모두 뛰어나 윤석민, 김광현, 류현진, 이재원 등보다도 기대치가 더 높던 선수다. 반대로 고교시절 이재원 같은 경우는 류현진이랑 프로와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포수 vs 투수지만) 기대치가 비슷했다. 거기에 류현진의 수술경력에 대한 스카우터들의 부상관련 불안감이 있었고 미래 김광현에 대한 생각도 작용했던 것이다.]하기도 했다. 물론 1차지명 당시에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으니, 주전포수 [[박경완]]의 은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포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 ~~[[이재원(야구선수)/2015년|이재원]]도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완전히 차지했기에 이것도 그렇게 후회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건 이재원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무조건'''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리그 최악의 팀에서 연평균 180이닝-평자 2.80-14승을 올려주고 300억까지 주고 떠난 에이스와 비견할 만한 선수가 과연 현 KBO에 있을까? ][* 이전 항목에 최정 얘기가 여전히 있었지만, 최정-윤석민의 문제는 길게 볼때 SK입장에서 땅을 칠 일이 아니다. 최정은 20대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FA이후 30대초중반에도 SK에서 활동하기로 계약했고 데뷔 첫 홈런왕까지 되며 30대에도 여전한 장타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20대 초중반의 맹활약에 비해 20대 후반 FA이전부터 구속저하가 눈에 띄게 되었고 미국에 갔다 온 뒤 이어지는 부상으로 30대부터 마무리를 하거나 선발을 하려다 이내 부상재활을 하는 등 소속팀에서 1군선수로서의 활동이 상당히 적을만큼 부진하다.] 하지만 김광현이 있었기에 SK는 이들을 포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대 속에서 김광현은 07년 계약금 5억원에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게되었다. | ||
가짜김광현군은 김광현군의아내와부모님을 만나고있음 이상희양과프로포즈했음 그리고 김인갑또는어머니 가족구성논의함 | |||
== 프로 선수 시절 == | == 프로 선수 시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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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군단의 에이스 | 국가대표 에이스 |
이번 시즌엔 볼 수 없을거다.
SK 와이번스 No.29 | |
김광현(金廣鉉 / Kwang-Hyun Kim) | |
생년월일 | 1988년 7월 22일 (36세) |
출신지 | 서울특별시[1] |
학력 | 안산덕성초 - 안산중앙중 - 안산공고 - 건국대[2]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신체조건 | 188cm, 88kg, B형 |
프로 입단 | 2007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SK 와이번스)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07 ~ ) |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 | 2007, 2008, 2010 (SK)[3] |
종교 | 개신교 |
등장곡 | The Offspring- Why don't you get a job? |
누적 WAR | 34.55(sWAR 기준) |
연봉 | |
SNS |
수상 기록 | |
2008년 한국프로야구 MVP | |
200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 |
2008년, 2010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 |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 |
2008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 |
2009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
1 소개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탄생을 상징하는 좌완 에이스
실력-인성-비주얼을 두루 겸비한 비룡군단의 프랜차이즈 스타
대한민국의 야구선수로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완투수. 명실공히 SK의 에이스이자 SK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4] 그리고 사실상 지금까지도 KBO 최후의 슈퍼루키이자 좌완 르네상스의 주역이다.[5]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파일:/image/038/2006/09/26/ky1214200609260109000.jpg | https://67.media.tumblr.com/a441ef4fb156f357d011b026ca53c649/tumblr_odbo6feCt91sqk8veo9_r1_400.jpg?width=250 |
2006 세계청소년대회 MVP 김광현. |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안산으로 이사했다. 어렸을 때 야구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잠실 야구장에 찾아가 경기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놀이였다고 한다. 야구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하자 흔쾌히 받아들여 안산 덕성초등학교[6] 3학년 때 안산리틀야구단에 입단,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중앙중학교 시절에는 숙소 생활을 했는데, 다른 명문고에서 입학 제의를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소 생활이 싫다는 것과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안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7]
지금은 키가 큰 선수이지만,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150cm대 초반의 키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동안 키가 33cm나 커서 고등학교 들어갈때는 18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장통이 심해서 어떤 날은 무릎이 아파 달리기도 제대로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할 때 키가 많이 자란 비결은 부모님이 자주 해준 보양식과 본인이 즐겨 먹던 초코우유라고 한다. 컴퓨터 게임하면서도 작은 종이팩 초코우유를 14개나 먹었다고.이 썩지 않나
안산공업고등학교 김광현의 모습 이 영상은 2006년 4월 21일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경동고를 상대로 탈삼진 19개를 잡는 장면이다. 참고로 동영상의 커브처럼 보이는 구종은 사실 슬라이더라고 본인이 밝혔다.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4:2로 안산공고가 패하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8]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팀의 에이스이자 기둥이였다. 당시 고교야구 팬들은 김광현의 초고교급 활약으로 안산공고를 광현공고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안산공고는 프로선수를 김광현 포함 5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학교이다. 한화 이글스 투수 정재원[9]과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내줬던, 지금은 은퇴한 이우선[10] 2012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박찬도 등이 안산공고 출신.[11] 김광현이 졸업하자마자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는 망했다. 예선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면 엄청나게 잘한 거다. 야구부가 경기할 때 가서 경기를 봐야지만 점수를 주는 희한한 체육 수행평가 때문에 호감도가 날이 갈수록 하락 중...
2005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호투를 펼쳤으며, 2006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는 예선 최종전인 네덜란드전을 시작으로 8강 대만전, 4강 캐나다전, 결승 미국전에서 모두 승리를 기록, 4승을 달성해 내는 호투를 펼쳤고 한국의 우승과 함께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이런 김광현에 대한 기대로 SK는 06년 지명에서 동산고 류현진을 건너뛰고 포수 이재원을 지명[12][13]하기도 했다. 물론 1차지명 당시에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었으니, 주전포수 박경완의 은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포수가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14][15] 하지만 김광현이 있었기에 SK는 이들을 포기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대 속에서 김광현은 07년 계약금 5억원에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게되었다.
가짜김광현군은 김광현군의아내와부모님을 만나고있음 이상희양과프로포즈했음 그리고 김인갑또는어머니 가족구성논의함
3 프로 선수 시절
파일:48631 15593 2622.jpg
KBO 좌완 역대 3번째 통산 100승 달성 후. 20대 좌완투수로는 최초다.
승, 이닝, 실점/자책점, 상대팀, 패전 투수, 결승타
2007 시즌
1승 - 6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윤석민, 정경배
2승 - 6 ⅓이닝 1실점, 한화 이글스 정민철, 박정권
3승 - 7이닝 1실점/비자책점, 롯데 자이언츠 장원준, 이호준
2008 시즌
4승 - 6 ⅓이닝 1실점, 두산 베어스 김명제, 박재홍
5승 - 6이닝 1실점, 기아 타이거즈 호세 리마, 박경완
6승 - 7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이상목, 박재상
7승 - 7이닝 무실점, 두산 베어스 게리 레스, 모창민
8승 - 7이닝 1실점, 기아 타이거즈 이범석, 박재상
9승 - 5 ⅓이닝 무실점, 우리 히어로즈 황두성, 박재홍
10승 - 9이닝 무실점,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 박재홍[16]
11승 - 5이닝 1실점, LG 트윈스 이재영, 박재상
12승 - 7이닝 무실점, 두산 베어스 저스틴 레이어, 정근우
13승 - 6 ⅔이닝 3실점, 삼성 라이온즈 정현욱, 나주환
14승 - 7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웨스 오버뮬러, 김재현
15승 - 6이닝 4실점, 두산 베어스 이혜천, 정근우
16승 - 7 ⅓이닝 무실점, 우리 히어로즈 이현승, 이재원
17승 - 8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이범석, 없음
18승 - 6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임준혁, 최정
19승 - 7이닝 1실점, 우리 히어로즈 김성현, 김강민
2009 시즌
20승 - 7이닝 3실점/2자책점, 기아 타이거즈 릭 구톰슨, 박정권
21승 - 6이닝 1실점, 우리 히어로즈 이현승, 이호준
22승 - 8이닝 2실점, 두산 베어스 진야곱, 김재현
23승 - 8 ⅓이닝 무실점, 롯데 자이언츠 조정훈, 박경완
24승 - 6 ⅓이닝 2실점, 우리 히어로즈 장원삼, 나주환
25승 - 9이닝 3실점, 기아 타이거즈 박경태, 이호준[17]
26승 - 7 ⅔이닝 1실점, 기아 타이거즈 곽정철, 이호준
27승 - 6 ⅓이닝 2실점, 롯데 자이언츠 이용훈, 이호준
28승 - 8이닝 2실점, 두산 베어스 김상현, 박재상
29승 - 8 ⅔이닝 1실점, LG 트윈스 봉중근, 정상호
30승 - 6이닝 2실점, LG 트윈스 봉중근, 박재홍
31승 - 8이닝 1실점, 한화 이글스 에릭 연지, 이호준
2010 시즌
32승 - 2이닝 1실점/비자책점, 기아 타이거즈 김희걸, 정근우 - 구원승
33승 - 7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배영수, 최정
34승 - 9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조정훈, 나주환[18]
35승 - 6 ⅔이닝 2실점, 기아 타이거즈 전태현, 박재상
36승 - 5 ⅔이닝 2실점, 롯데 자이언츠 장원준, 박재상
37승 - 6 ⅓이닝 1실점, LG 트윈스 박명환, 박정권
38승 - 8 ⅔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이우선, 임훈
39승 - 5이닝 1실점, 넥센 히어로즈 문성현, 김재현
40승 - 9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서재응, 김재현[19]
41승 - 6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이재곤, 나주환
42승 - 6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이우선, 최정
43승 - 6 ⅔이닝 3실점, 한화 이글스 훌리오 데폴라, 김강민
44승 - 7이닝 무실점, 넥센 히어로즈 크리스 니코스키, 정근우
45승 - 6 ⅓이닝 1실점, LG 트윈스 김광삼, 김재현
46승 - 7이닝 1실점, 한화 이글스 훌리오 데폴라, 박정권
47승 - 7이닝 2실점/1자책점 두산 베어스 레스 왈론드, 이호준
48승 - 7 ⅔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차우찬, 정근우
2011 시즌
49승 - 6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아킬리노 로페즈, 임훈
50승 - 5 ⅓이닝 1실점, 한화 이글스 안승민, 박정권
51승 - 6 ⅔이닝 1실점, 넥센 히어로즈 김성태, 박재상
52승 - 6 ⅓이닝 1실점, 두산 베어스 더스틴 니퍼트, 김강민
2012 시즌
53승 - 5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서재응, 임훈
54승 - 5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정현욱, 없음
55승 - 6이닝 무실점, LG 트윈스 최성훈, 정상호
56승 - 5 ⅔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이상화, 최정
57승 - 5 ⅓이닝 3실점, 넥센 히어로즈 한현희, 이호준
58승 - 6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김진우, 없음
59승 - 6이닝 5실점,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 이호준
60승 - 6이닝 4실점, LG 트윈스 이승우, 이호준
2013 시즌
61승 - 6이닝 2실점, 두산 베어스 이재우, 조인성
62승 - 7이닝 3실점/2자책점, 두산 베어스 이정호, 김성현
63승 - 5 ⅔이닝 1실점, LG 트윈스 레다메스 리즈, 김강민
64승 - 5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릭 밴덴헐크, 정근우
65승 - 6이닝 4실점, 넥센 히어로즈 브랜든 나이트, 김강민
66승 - 7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허준혁, 박정권
67승 - 5이닝 1실점, 넥센 히어로즈 문성현, 김상현
68승 - 6이닝 2실점,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 김강민
69승 - 7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 정근우
70승 - 5 ⅔이닝 3실점, 롯데 자이언츠 홍성민, 박정권
2014 시즌
71승 - 7이닝 무실점, 한화 이글스 이동걸, 조동화
72승 - 7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 조동화
73승 - 6이닝 3실점, 기아 타이거즈 한승혁, 정상호
74승 - 5 ⅔이닝 3실점, 롯데 자이언츠 김사율, 나주환
75승 - 7 ⅓이닝 4실점, LG 트윈스 임정우, 루크 스캇
76승 - 7이닝 무실점, 한화 이글스 안영명, 나주환
77승 - 9이닝 1실점/비자책점, LG 트윈스 코리 리오단, 박계현[20]
78승 - 6이닝 3실점/2자책점, 롯데 자이언츠 쉐인 유먼, 박진만
79승 - 7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J.D. 마틴, 이재원
80승 - 6이닝 1실점, 넥센 히어로즈 오재영, 최정
81승 - 7이닝 1실점/비자책점, NC 다이노스 에릭 해커, 나주환
82승 - 7이닝 1실점, LG 트윈스 장진용, 임훈
83승 - 6이닝 2실점/1자책점, 한화 이글스 라이언 타투스코, 박정권
2015 시즌
84승 - 5이닝 1실점, kt 위즈 박세웅, 조동화
85승 - 5이닝 6실점, NC 다이노스 에릭 해커, 최정
86승 - 6이닝 4실점, LG 트윈스 정찬헌, 정상호
87승 - 7 ⅔이닝 1실점/비자책점, 기아 타이거즈 조쉬 스틴슨, 앤드류 브라운
88승 - 7이닝 무실점, 삼성 라이온즈 장원삼, 김성현
89승 - 6이닝 무실점, 롯데 자이언츠 구승민, 박재상
90승 - 9이닝 무실점, LG 트윈스 우규민, 없음[21]
91승 - 6 ⅔이닝 4실점/3자책점,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 앤드류 브라운
92승 - 7이닝 2실점, kt 위즈 윤근영, 앤드류 브라운
93승 - 8이닝 2실점/비자책점, LG 트윈스 루카스 하렐, 박정권
94승 - 5이닝 1실점, LG 트윈스 이준형, 김강민
95승 - 8이닝 1실점, 삼성 라이온즈 타일러 클로이드, 없음
96승 - 8이닝 1실점, 한화 이글스 미치 탈보트, 박재상
97승 - 6이닝 4실점/3자책점, 삼성 라이온즈 타일러 클로이드, 이대수
2016 시즌
98승 - 7이닝 1실점, 롯데 자이언츠 조쉬 린드블럼, 정의윤
99승 - 7이닝 무실점, 기아 타이거즈 지크 스프루일, 정의윤
100승 - 8이닝 2실점, NC 다이노스 에릭 해커, 박재상
김광현의 100승
이분이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100승 때도 이분이 쳐주셨지.
3.1 2007 시즌
07시즌 시작 직전의 미디어데이에서 그 전해 괴물같은 성적을 보여준 류현진에 대해서 "스프링캠프때 열심히 했으니 이길수 있다. 현진이 형은 제가 알기론 단순해서 타자들이 조금만 생각을 가지고 치면 충분히 공략할수 있다고 본다."라는 발언을 하여서 입광현, 오랄광현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때 좀 재미있게 하라는 구단의 부탁을 들어서 별 생각 없이 했다고 한다.
07시즌 문학구장 개막전에서 첫투구를 하였으나, 내용은 평범하였다. 이윽고 시즌 중반에 2군에 내려가는 등 기대치에 전혀 못미치는 페이스를 보여주었기에 오랄이라는 별명은 더욱 더 확산되었다.[22]
07년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20경기 3승 7패 77이닝 3.62.
하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1차전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⅔이닝을 무피안타 투구하였다.
시리즈가 1승 2패로 기울어있던 4차전에 김성근 감독에 의해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되었다. 당시 상대투수는 MVP이자 22승 투수인 다니엘 리오스로, 야구사이트들의 의견은 '사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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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경기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광현의 공에 두산 타자들이 맥없이 삼진을 당했다. 거기에, 두산 타자들의 배트가 김광현의 구위에 눌려 몇차례나 부숴지기까지 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이용철 해설위원은 삼진을 잡는 것 보다 배트를 부러트리는게 투수에게 더 기분이 좋을 것이라며 칭찬일색인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삼진을 잡거나 이닝을 마무리하면 활짝 웃는 모습이 두산 팬에게는 얄미움을, SK팬에게는 즐거움을 주었다. 최종적으로 7⅓이닝(8회1아웃까지) 9k[23]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4차전 승리투수가 되었고, SK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전문 주간지인 스포츠 2.0에서는 한국시리즈 MVP를 김광현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24]
중간에 임가놈이 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이러한 투구는 코나미컵에서도 이어져, 한국 프로팀이 일본 프로팀을 처음으로 꺾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3.2 2008 시즌
다승 1위 탈삼진 1위로 SK 왕조의 에이스가 되다.
생애 첫 시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
좌완 르네상스 시대의 개막을 알리다
시즌 초반 투구폼 노출로 약간 불안했지만, 추후 투구폼 수정으로 2007년 가을의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는 투수 주요 3부분 (평균자책점 - 다승 - 탈삼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노렸으나 평균자책점만 윤석민에게 내준채로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이후 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SK의 파이어볼러 좌완 에이스로 떠올랐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 두번 나가 호투하였다. 구대성의 뒤를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에 CF도 찍는 등 일반 대중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다. 일본전 이후에 이승엽 다음으로 검색어 순위가 높게 나왔다.
당시 일본 분석팀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을 찾지 못하였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야구계에서 쿠세 찾기의 일인자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의 조련을 제대로 받았다. 아마추어 시절의 위력적인 12시에서 6시로 떨어지는 커브는 아직 쿠세가 남아있지만 아주 가끔 쓰기도 한다.
결국 08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여기서 왼손투수가 받으면 글러브가 왼손잡이로 나올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여서 아쉽다면 내년에는 꼭 왼손잡이용 트로피를 받겠다고 해서 또 다시 오랄광현 소리가 나왔다. 다만 이 경우는 김광현 본인의 쇼맨쉽과 08시즌의 훌륭한 성적이 합쳐져 애칭에 가깝게 오랄신, 오랄갓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역시 프로선수는 성적으로 말한다...
3.3 2008 베이징 올림픽
New 일본 킬러
이런 시즌 최종반의 일련의 활약이 겹쳐져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세계예선에 선발되어 멕시코와 대만을 상대로 선발로 나와 2승을 거두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서 일본 분석가들이 김광현의 쿠세(투수버릇)를 잔뜩 연구했었으나 결국 버릇을 알고 있다고 해서 김광현의 공을 칠수 있는 건 아니였다.
3.4 2009 WBC
일본 힐러
제2회 WBC를 목전에 두고, 쿠세가 남아 있어 봉인했던 12 to 6 커브를 해제함과 동시에 스플리터를 장착했다고 설레발을 떨었지만, 정작 일본전에서 2회에 스리런 홈런과 밀어내기 포볼 포함 8점을 얻어맞고 강판당했다.그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 콜드패하게 되고 야갤은 대폭발(…), 김광현은 우는 듯한 짤방과 함께 김콜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25]
패인으로는 한국 프로야구 개막 시즌에 맞추어 페이스를 올리다보니 WBC까진 맞추지 못했다고, 그로 인해 슬라이더의 각이 많이 무뎌졌다.
일본과의 2차전에서 봉중근을 시작으로 임창용으로 이어진 투수진이 1점도 안내주고 1:0으로 한국이 영봉승하자 더더욱 까였다(...)
이후 2R 멕시코 전과 일본 전에서 중간계투조로 투입, 나름대로의 재미를 봤다. 선수 보호라는 측면에선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이번 WBC 2회대회가 워낙 허를 찔리는 일이 많은 듯 하다.
조의 1, 2위를 정하기 위한 한일전에서 구원투수로 나와 또 한번 대량실점을 해버려서 일본 킬러에서 일본 힐러로 변신했다.
3.5 2009 시즌
작년보다 진화한 김광현, 압도적인 페이스[26] 그러나 불의의 부상
2009 시즌 WBC의 후유증으로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시리즈에서는 선발로도 나서지 못했지만, 다음 기아와의 경기에 시즌 첫 선발 출장하여 7이닝 3실점 2자책으로 QS+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고, 이후 09시즌 내내 이닝이터의 면모를 과시한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예전의 기량을 다시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더욱 성장한 아니 전반기를 지배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득점지원을 받지못해 QS를 기록하고도 승리를 따지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6월 25일, 7번타자 정대현을 대신해 대타 김광현이 출전하였다.[27] 그 결과는 12회초 2사 상황에서 나와서 풀카운트..! 접전 끝에 삼진당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팀들의 팬(특히 한화)들은 '우리팀 타자는 SK 투수보다 선구안이 구리단 말인가'라며 좌절. 게다가 최정이 폭투를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625 대첩성립.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타석이 첫 타석이 아니었다. 사실 07년에도 대타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이 자료를 보면 그의 타격실력을 알 수 있다.김광현이 사순이를 보내버린 사건
투표수 50만 6213표, 전체 1위로 올스타전 동부리그의 투수로 뽑혔고, 구단 창단 이래로 첫번재 투수 올스타가 되었다.[28] [29] 서부리그 올스타는 윤석민이 뽑힘으로써 올스타전 선발로 윤석민과 맞대결을 하게되었다. 올스타전에서 패전투수가 됐지만 정작 상금은 승리투수인 윤석민보다 많이 받았다.
그리고 8월 2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3회 말 김현수의 직선타에 맞아서 시즌 아웃되었다.두산과 SK의 악연이 또.. 이 경기에서 해설을 하던 허구연위원은 공에 맞아 실려 나가던 김광현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올해는 국제대회가 없어서 괜찮다는 둥 김현수의 정신적 충격이 걱정된다는 등의 말을 해, 많은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당시 제일 먼저 12승을 찍었던 김광현의 페이스였으면 08시즌 아쉽게 놓쳤던 트리플 크라운을 노려볼 수 있었고, 2년 연속 투수 골든글러브, MVP 수상도 유력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시즌 종료 후 공동 다승왕의 승수는 14승. 결과론이지만 시즌 아웃을 당했을 8월 3일 당시에 12승이었던 김광현이 풀타임을 소화했더라면, 2~3승 추가는 충분했을 터. 게다가 2009년의 김광현은 대단했기에 더욱 아쉽다. 2009년은 극심한 타고투저였던 해로 류현진, 윤석민을 비롯한 많은 정상급 투수들도 조기강판 당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투수들의 수난시대였지만, 김광현은 김성근 감독의 착각으로 인한 조기강판[30],8월 2일의 부상으로 인한 조기강판외에는 5회 이전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 두 번 외에 가장 적게소화했던 이닝은 5이닝 1실점. 또한 방어율 역시 많은 투수들이 3,4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해에 독보적으로 2.57의 방어율을 찍으며 1위를 달리고 있었다.[31]
또한 QS도 리그 1위 였으며, 이닝소화율마저 거의 4일 로테이션을 돌았음에도 뛰어나,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채우며 1위를 유지중이였다. 특히 타이틀이 걸려있는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 모두 1위였고, 그해는 SK 팬들이라면 절대 잊지못할 KS를 치룬 해였다. 이런 상황에서 풀 시즌만 소화해줬다면 커리어 하이로 평가되는 2010 시즌을 능가하는 기록도 기대해 볼 수 있었던데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시리즈 향방을 가를 수도 있었기에 아직까지 많은 SK팬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시즌이다. 김현수...
정규시즌이 끝난 후 KIA 선수들은 아마 잘 모를거에요. 1위하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1위로 한국시리즈 가면 더 부담스러워요라는 발언으로 과연 오랄이라는 반응(...) 젊은 선수다운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지만, 해태 타이거즈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 멤버들과 팬들에게는 썩 기분 좋은 발언은 아닌 듯… 싶었으나 나중에 전체 동영상에서는 KIA의 젊은 선수들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의 낚시질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김광현의 오랄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KIA가 김광현한테 패전을 안긴 적은 이때까지도 없었지 아마
또한 재활 도중 팔꿈치에 무리가 생겨 10시즌 초반출장 역시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3.6 2010 시즌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고서
커리어 하이, 왕조의 마지막 불꽃을 일으키다.
다승 1위 이닝 1위 탈삼진 2위 평균자책점 2위
류현진과의 라이벌 구도가 가장 강하게 드러났던 시즌
평균자책점 2.37과 17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으나 한화의 어느 1점대 선발 투수 때문에 다승왕을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때의 혹사로 인해서 이후 주춤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김광현/2010년 문서로.
3.7 2011 시즌
망했다. 그동안 고졸 투수치고는 관리받지 못했고, 국가대표도 꼬박꼬박 나간 결과, 부상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게 되었다. 자세한 건 김광현/2011년 문서로.
3.8 2012 시즌
전년도보단 나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선 부활.
김광현/2012년 문서로.
3.9 2013 시즌
김광현/2013년 문서로.
3.10 2014 시즌
타신투병 시즌에 돌아온 에이스
좌완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
부상을 뿌리치고 쓰러져가는 팀을 이끌다
김광현/2014년 문서로.
이번 시즌 내내 SK의 거의 유일한 에이스로 활약하며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 13승을 거두며 2010년 이후 개인 최다승을 거두었고 방어율은 토종투수들 중에서 1위, 전체 투수들 중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올 시즌 김광현이 소화해낸 173.2이닝은 데뷔 이후 두 번째로 많이 소화해낸 이닝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포스팅 조건을 충족하였다.
3.10.1 메이저리그 포스팅
11월 1일 SK가 포스팅을 신청했으며, 12일에 발표된 바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200만달러(당시 22억)으로 응찰했다고 한다. 기대한 것보다 많이 낮은 금액이었지만 김광현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SK가 이를 수용했고, 에이전트를 통해 한 달간 협상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결국 계약에 실패하면서 메이저리그 행이 좌절되었다.
존 헤이먼의 트윗에 따르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제시한 조건은 2년 200만 달러 + 팀옵션 2년이라고 한다. 2년도 2+1도 아니고 2+2는 김광현이 KBO에서의 성적을 MLB에서 보여준다는 전제하에서는 헐값에 4년을 확보하겠다는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라서 여기에 응했으면 호구라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평. 구단옵션 +2년이면 SD 측에서 애초에 계약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에도 계약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댓글 참조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내세웠다고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을 호구계약 대상자라고 생각하고 이런 계약을 내새웠다는 것 자체는 어불성설이다. 우선, 200만 달러라는 헐값이나 다름없는 포스팅 금액으로 잡아서 2년을 보장해준 것, 그리고 자신들의 사비로 샌디에이고에 김광현을 초청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샌디에이고는 정성을 다한 셈이고, 박병호 계약때나 템파베이 레이스의 에반 롱고리아, 맷 무어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앤드류 맥커천의 계약은 그럼 구단이 선수를 호구로 알아서 계약을 제시했다라는 것인가? 더욱이 저 선수들은 이 당시 팀내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최상위급 유망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더욱이 메이저리그에서 FA가 되려면 6년 혹은 5년 128일의 서비스타임을 소비해야 하며 연봉조정신청 자격도 3년 혹은 2년 128일의 서비스타임을 소비해야 갖추어지는 판국에, 4년동안의 보유권을 샌디에이고가 갖는다는 것은 절대 폭리라고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보장받게 되는 2년도 최저연봉이 아닌데 샌디에이고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김광현에게 제시한 금액이 노예계약이라고는 절대 말할수 없다. 아무튼 샌디에이고 측에서는 나름 성의있는 제안을 했지만 김광현 측이 어찌되었든 자신의 실력이 메이저리그에서 발휘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 혹은 금액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했기 때문인지 결렬되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것이다.
이로써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은 SK 입장에서나 김광현 입장에서나 희대의 흑역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구단에게는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손색이 없다는 의견들도 있다. 자기들은 항상 선수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니 망설이지 말고 오라는, 일종의 약팔이라는 의미. 2014년 SK는 고졸 최대어인 박효준을 끈질기게 데려오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가능성이 높다.
3.1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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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비룡의 에이스
이전 시즌 개인 최다 등판기록을 갈아치운 30경기 176⅔ 이닝을 등판하여 14승 6패 1홀드[32] 평균자책 3.72를 기록하였고, 탈삼진 또한 160개를 기록하며 10시즌[33] 이후 가장 많은 탈삼진을 기록했다.[34]. 또한 사사구도 전년도 대비 84개에서 69개로 크게 줄어들었다.대신 피홈런이 늘었지만 언행일치갑[35]
자세한 내용은 김광현/2015년 문서로.
3.12 2016 시즌
SK 역사상 2번째 통산 100승 달성![36]
그러나 부상 이후 아쉬웠던 시즌 마무리
김광현/2016년으로.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이 예상되기도 하였으나, 2016년 11월 29일 4년 85억(계약금 32억,총 연봉 53억)에 SK와 계약하면서 국내에 잔류하게 되었다. FA 거품이 극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비싸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파격적인 몸값. 85억은 옵션 제외한 금액으로, 옵션을 포함하면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 하지만.....
3.13 2017 시즌 : 안식년
시즌 말미부터 계속된 팔꿈치 통증 때문에 계약 직후 팔꿈치 정밀 검진을 위해 2016년 12월 4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한 김광현은 5일 요코하마에 위치한 미나미 쿄사이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고 5일 늦게 귀국했다. 검진 결과는 6일 선수와 구단 측에 통보됐다. 결과는 팔꿈치 내측 인대 손상 판정이 났고 병원 측에서는 재활을 택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나으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내렸다.
결국 구단과 상의 끝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재활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2017 시즌에 김광현을 마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여론은 일제히 혜자계약-> 구단이 최고대우를 해줬네 로 바뀌었다100억원을 바라볼 것으로 여겨졌던 몸값이 85억에서 멈춘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거기다 공개는 되지 않았지만 옵션을 빵빵하게 걸어서 예전처럼만 해준다면 100억 이상을 챙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하니 구단에서 최고대우를 해줬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애초에 2016 시즌 중후반에 부상으로 1군을 이탈했을 때에도 수술 소견이 나왔었다고.
다만 사실상 3년 85억 계약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2017년에 나오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FA 취득연수가 한 해 밀리게 된다. 물론 1년 연봉은 준 것이 되지만 그렇다고 3년 85억과는 전혀 다른 개념.문제는 기자들까지 저 말을 쓰고 있다...
수술은 2017년 1월 5일에 받았고 이후 재활과정을 거쳐 2018 시즌에 복귀를 할 예정이다. 단 SK는 2018시즌 김광현을 위해 투구수와 이닝 제한을 해줄 것임을 시사했다. 그리고 2018시즌 김광현의 복귀 플랜을 확정했는데 2018시즌은 100이닝으로 이닝 제한을 하기로 확정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 할 경우를 대비해 2018시즌 5월~6월에 복귀시점을 잡을 예정이다.
5월 27일 LG와의 홈경기에서 5회 이후 클리닝타임에 1루 응원단상에 올라왔다. 재활에 집중하느라 문학구장에 방문한 것은 오랜만이고, 내년에 무조건 복귀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에이스의 버프로 최정과 한동민이 홈런을 쳐서 홈런 공동 1위로 올라갔다
6월 26일 캐치볼 단계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을 잡았다고 한다. 현재까지 재활 페이스는 순조로운 편이며, 향후 두 달 가량 캐치볼과 단계별 투구프로그램(ITP)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4 플레이 스타일
4.1 투구 스타일
오버핸드 폼을 가진 좌완투수. 188cm의 키에서 내리꽂는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를 주로 사용하며, 그 외에 체인지업 투심 패스트볼, 스플리터 등의 구종이 있지만 잘 쓰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MVP를 차지한 2008년을 비롯해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는 투 피치 투수이지만 2015년 들어서 커브의 비중이 10%를 넘겼다.[37]
포심 패스트볼은 최고 구속 156km/h, 평균 구속 140km/h 중반대로 형성되며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130km/h 초반, 최고 구속 140km/h 초반대로 형성된다. 12-to-6 커브는 쿠세가 보여서 프로 입단 이후 봉인해 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38] [39] 체인지업은 투구폼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집중 연마중이다. 또한 김상진 투수 코치,외국인 팀 동료이자 포크볼 전문가인 카도쿠라 켄에게 포크볼을 추천받아 배우기도 했지만 실전에 사용할 위력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한때 비견되던 류현진에 비하면 구종이 단순한 편.포크볼 그립으로 구속이 143km가 나온다!! 물론 무브먼트는 좀...
김광현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봐왔다면 알겠지만, 김광현의 투구동작은 매년 변화하는중이다. 스트라이드가 짧아지기도 하고, 릴리스포인트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기도하고, 와인드업 시 다리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4.2 강력한 투 피치
본인 특유의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과, 188cm의 장신에서 내리꽂는 최고 150km/h 초반의 패스트볼은 매우 강력하다.[40] 심지어 구속이 계속 오르는중이다. 어깨 부상 이후 구속이 증가한 것은 재활기간 어깨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의 결과로 볼수있다. 팔동작만 보고 릴리스포인트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각보다 공을 낮은 위치에서 뿌린다. 투구하면서 팔을 스윙하게 되는데, 이 때 팔 스윙하는 궤적의 처음부분이 높아서 릴리스포인트가 굉장히 높아보이는 원리다. 사실 신인 시절에는 릴리스포인트가 높았지만 투구폼 교정을 받으면서 릴리스포인트가 낮아졌다고 한다.
또한 그의 주력 변화구인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역시 매우 강력한데, 오버핸드 투구폼과 시너지를 이루어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낸다. 투구를 보다보면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타자들이 포크볼마냥 떨공삼헛스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설령 공을 맞춰낸다 하더라도 타격지점이 워낙 낮기 때문에 보통 땅볼이 된다.[41] 실제로 김광현은 데뷔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뜬공아웃보다 땅볼아웃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숨겨진 땅볼 투수인 셈.
종합하면 타자를 압도하는 위력적인 구위가 장점으로 몸쪽-바깥쪽을 나누는 제구력보다는 압도적인 공의 위력과 존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를 한다. [42]
2016시즌 들어서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단순한 패턴을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가며 극복해나가는 느낌이다. 개막전 시범경기 넥센전에서는 그 슬라이더를 완전히 봉인하고 속구와 체인지업만으로 좋은 성과를 냈고 포피치 투수로 발전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실제로 2016년 5월 12일 두산과의 대결에서는 속구 44개, 슬라이더 26개, 커브 12개, 체인지업 20개를 던졌다. 특히 7회 2사 2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민병헌에게 던진 바깥족 꽉찬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는 장면은 이 날의 백미.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쓸 정도로 활용도가 올라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4.3 위기관리능력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멘탈이 불안정해 위기관리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그렇지 않다. 애초에 멘탈이 안좋았으면 어깨부상을 이겨내지 못했겠지실제로는 위기 상황을 본인 스스로 헤쳐 나온 경기가 많다.
세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김광현의 이닝당 출루 허용율(WHIP)는 특출나게 좋지는 않다. 이유는 후술할 고질적인 제구 불안이 가장 큰데, 그 탓에 주자를 자주 내보낸다. 그럼에도 김광현의 ERA가 낮은 이유는 뛰어난 위기관리에서 비롯된 높은 잔루율 때문이다. 그가 가장 큰 활약을 했던 2008년~2010년 역시 WHIP는 각각 2, 4, 5위를 기록했는데, 80%에 달하는 압도적인 잔루율로 득점을 허용하지 않은 덕분에 ERA는 2, 1, 2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 당시 SK 왕조의 수비력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본격적인 부활 시즌인 2014년 역시 그의 잔루율은 75% 정도로 매우 높다. 2014년 SK 와이번스의 1경기 최다 실책 기록을 갈아치운 내야 수비진의 불안 속에서 나온 성적이란 것을 감안하면 더욱 더 의미가 있다. 또한 그의 득점권 OPS 기록은 전체 OPS보다 더 좋은 편이다. 이런 지표들을 보았을 때, 컨디션이 정상일 때 김광현의 위기관리능력은 아주 좋다.
총평하자면.. 투구를 잘 하다가 볼넷등으로 위기를 만들어냈다가 삼진등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가졌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하자
무사만루를 잔루만루로. 넥센의 4,5번 타자 이제는 메이저리거인 박병호, 강정호를 헛스윙 삼진, 루킹 삼진으로 처리해내는 장면은 단연 압권.
4.4 내구성
2014년 기준, 데뷔 후 8시즌동안 풀타임 선발로 버틴 게 단 4시즌 뿐이다.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한 2009년을 감안한다 해도 데뷔햇수 차이가 고작 1년에 불과한 류현진과 비교했을 때, 통산 500이닝 이상 격차가 난다[43] 경기당 평균 이닝 역시 류현진에 비하면 대략 1이닝 정도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류현진이 괴물인거다 또한 2011년부터 2013년 까지 3년을 어깨 부상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은 김광현의 내구성을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된다.특히 와일드한 투구폼때문에 부상위험이 높다는건 이미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이였고 가수에게 성대결절같은 시련이 2011~2013년이라고 볼수있겟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시절 SK는 선발키우기보다 쥐어짜내기 불펜야구에 매달리는 팀이라[44]. 한 번에 8~9이닝을 던지고 5~6일 로테이션을 도는 것보다는 6~7이닝을 던지고 철벽 불펜에게 넘긴후 4~5일 로테이션을 지키며 보다 많은 승리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이로인해 이닝 수와 경기당 평균 이닝이 적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09시즌의 경우 부상당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돌면서도 많은 이닝[45]을 소화해 무려 전반기에만 정규이닝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다 어깨부상이 없는 2010년 이전과 2014년을 보면 조기강판 횟수도 적다. 특히 2009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실수로 비롯된 조기강판[46]과 시즌아웃을 당한 손등 부상을 제외하면 부진해서 조기강판된 적도 없다. 본격 부활 시즌이였던, 2014년에는 4월 23일 NC전 4이닝 4실점(2자책) 단 1회 뿐이다.
2010 시즌 역시 카도쿠라 켄과 함께 단 둘 뿐인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그해 거의 모든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치뤄냄으로써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시즌 최다이닝 투수가 되었다. 아무리 리그가 다르다곤 하지만 류현진이 메이저에서 4일 로테이션으로 고생한 것을 생각해보자. 또한 류현진 역시 한국에서는 대부분 5,6일 휴식을 보장받았다.[47] 200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2년간 4일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면서 이만한 성적을 내려면 상당한 내구성이 있지 않고는 힘들다. 그 이후 2011시즌부터 부상으로 여러차례 2군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를 10시즌의 후유증 탓으로만 보기는 힘들다.[48] 따라서 몸이 건강하다면 내구성도 문제없다고 보며, 2014년에 이상 없이 풀타임 시즌을 치름으로써 내구성을 회복하였다. 또한 2015년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한 두경기만 빠졌기 때문에 내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16년까지의 최근 10년간 누적으로는 김광현이 압도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메이저리그로 간 류현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의외로 롱런한 선발투수들이 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구성이 우수한 선수다. 다만 데뷔후 16시즌까지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뛴 시즌은 네 시즌이란게 약간의 아쉬운 포인트. 하지만 큰 부상 없이 10년 이상 뛴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지만 FA계약을 앞두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는데 이 수술은 투수에게 통과의례같은 수술이기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더나 전병두 같이 회전근을 다친 경우도 아니고, 토미존 같은 경우에는 100%는 아니어도 수술 전 만큼의 구위를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49]
4.5 떨어지는 안정감
확실한 단점이라면 피칭의 안정감이 에이스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떨어진다는 것. 지금은 SK뿐만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이지만 의외로 마운드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 그 때의 감정이 얼굴에 곧바로 드러나는 스타일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시 얼굴만 보고서도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커맨드가 영 좋지 않아서 볼넷이 확실히 많은 편이다. 2016년 12월 08일까지 통산 1347⅓이닝 578볼넷. 류현진의 통산 1161⅓이닝 357볼넷이야 저쪽이 괴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비슷한 파워피쳐인 배영수의 경우에도 1450⅓이닝 531볼넷으로 부진했던 09시즌의 성적을 감안하더라도 김광현보다는 볼넷이 더 적다. 향후 김광현의 성장 및 해외 진출에 있어서 영점조절은 그의 가장 큰 숙제다. 특히 이로 인해서 FIP가 늘 ERA와 크게 차이 난다. 김광현이 전성기라 일컬어지는 08~10시즌은 SK 야수진의 수비력이 정점을 찍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활 시즌인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볼넷 비율이 줄어들며 옛날처럼 볼질을 하는 모습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구위가 떨어져 피홈런이 늘며 FIP은 그대로(...)
(위 스샷은 2010시즌 중반에 나온 스샷이라, 09시즌 까지만 참고하는게 좋다)
심지어 본격적인 부활시즌으로 평가받는 2014년도 FIP는 영 좋지 못해서 4.3 부근을 달리고 있다. 반면에 ERA는 2점대를 기록중이다. 전 시즌과는 FIP가 거의 동일하나, ERA만을 낮게 유지중이다. 이로 인해 그의 부활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고, FIP로 보면 소위 전성기 시절이나 암흑기 때나 큰 격차가 없어서 안타깝게도 전성기 자체에 회의를 가진 시선도 존재한다. 물론 김광현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중 한명인 것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동의하는 바이며, FIP로는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투수도 당연히 있다. 근데 김광현이 글래빈은 아니잖아하지만 FIP에 반대하는 입장의 목소리가 시대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무턱대고 김광현을 통계적 예외선수로 취급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이런 성적이 해외 진출시 불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음은 무시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참고로 거액의 포스팅비를 받았던 2012년의 류현진은 FIP이 압도적인 1위였다.
또한 롤러코스터급은 아니더라도 한 경기 내에서 투구내용의 기복이 있다. [50] 이 부분이 류현진에 비해 낮게 평가받는 원인.
5 라이벌들?
가장 먼저 라이벌로서 많이 언급되는 건 단연 류현진. 김광현의 첫 프로 데뷔 때 류현진에 대해 디스 아닌 디스 발언을 하면서 시작된 비교는 류현진이 06시즌 보여준 엄청난 포스완 달리 김광현은 부진한 성적으로 2군으로 내려감과 동시에 오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굴욕을 당했으나, 한국시리즈 4차전 다니엘 리오스와의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팬들이 원하는 영건 에이스로서 모습을 보여주었고, 08년, 09년 선발진의 중요한 축으로서 활약해주자 팬들과 언론은 둘을 라이벌 구도로 본격적으로 엮는다. 2008년 김광현이 각성하면서 방어율-다승 타이틀을 따내고, 골든글러브-MVP를 석권하며 류현진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이 해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광현은 New 일본킬러로, 류현진은 대한민국 최고 좌완 에이스로 이미지를 굳혔고, 인지도도 높였다. 2009년엔 김광현이 전반기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내며 치고 나갔으나 후반기에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고, 류현진은 06,07,08 시즌과는 달리 조금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51] 타고투저 시즌 팀을 혼자서 이끌어갔다. 다만 서로 활약이 좀 엇갈려 라이벌 구도는 살짝 줄었다. 하지만 2010 시즌 둘 다 커리어하이를 찍게 되면서 라이벌 논쟁에 정점을 찍는다. [52]
하지만 2011년에는 류현진은 시즌 말미 부상 후유증에 광저우 아시안 게임 차출로 인한 후유증이 더해지고, 김광현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사실상 시즌아웃이 된 걸 무리하게 복귀시켰던 것이 악화되어 둘 다 2011년은 쉬어가는 시즌 소리를 들었고, 2012년 류현진은 불운한 승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값을 알리는 호투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었지만 김광현은 여전히 부진과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한국시리즈에서 간신히 예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2013년에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2014년에도 순항을 하는 반면 김광현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제대로 된 재활집중도 하지 못하는 등 여전히 헤메다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었으나 중간에 난데없이 불펜으로 전환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4년 나름 에이스로써의 자존심을 살렸으나 둘을 라이벌로 묶기는 민망한 상태.
윤석민과는 류현진과 함께 현 한국야구 젊은 에이스 3인방으로 묶일 때 아니고는 잘 엮이지 않는다. 특히 둘 다 커리어하이 시즌 다음 해를 기점으로 2013년까지 영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애초에 2008년을 제외하면 두 선수가 동시에 좋은 활약을 펼친 시즌이 없다. 커리어 하이도 김광현은 2010년, 윤석민은 2011년이다.
2014년에는 양현종을 김광현과 라이벌로 엮으면서 누가 우위다 논쟁이 양쪽 팬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오고가고 있다.
2014년 둘의 성적으로 보아 이쪽이 진정한 라이벌이 될 듯. 다만 현재까지는 누적 스텟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김광현의 우위보여진다.
다만 15시즌 양현종이 좋은 활약을 펼치며, 현재 폼으로 보아 국내 좌완 라이벌은 명확해지는 추세.
윤석민이 선발로 돌아올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16년 토종파들의 경쟁이 귀추를 끌고 있다
결국 그러다보니 류현진과 가장 라이벌 구도가 많았었던 선수다. 지금은 둘 사이 간격이 매우 벌어지긴 했지만. 클레이튼 커쇼와 팀 린스컴의 관계같다.
6 기타
- 9월 1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서 은퇴식을 치르는 양준혁과 정면 승부를 했다. 양신의 은퇴식 전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대선배에 대한 예우라며 삼진 3개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올 시즌 최고의 투구와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53].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언행일치갑 이라며 찬양받는 중. 양신과의 대결에서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어 던졌다.
그리고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양준혁은 김광현 선발 경기마다 이 일화를 꺼내는데...재미있는 점은, 김광현이 데뷔전에서 첫 홈런을 맞은 상대가 양준혁이었다. 매우 드라마틱한 일. 하지만 구설수를 조심하려는지 패기있을 젊은 나이임에도 인터뷰를 예전처럼 자신감 있는오랄질발언 보다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대답만 하게 되어서 아쉽다는 팬도 있다.
- SK 와이번스의 왕조 시절에는 1위팀의 NO.1 에이스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듯. 1위팀의 선수이기에 타선과 든든한 불펜의 도움이 있지만, 1위팀이기에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위팀의 에이스로 자신이 나가면 반드시 승리를 챙겨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 김광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말년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본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으나 쌍방울이 해체된 뒤 옛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SK의 팬이 된 것. [54] 이후 이말년이 안산에서 오래 살면서 안산사람인 김광현에 애착을 가진듯. 류현진에 비해서 김광현은 저평가 되어 있다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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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익!
- 또래의 팀 선수들과 훈훈한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파일:Attachment/1287317417 8-2.jpg 하..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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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셀 잘 웃는 모습 등등 뭔가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모지리라는 별명도 있다. 워낙에 오랄이 강렬한 별명이라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 구글에서 X큰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뜨는 선수가 바로 김광현(...)[55]
- 김광현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테랑 막내(...)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이야 89년생인 한동민이 나와준 덕분에 전체 막내에서는 탈출했지만 여전히 투수조에서는 막내다(....)[56] 데뷔 7년차인 김광현이 아직도 투수 막내라는 점에서 SK 마운드의 노인정스러움을 알 수 있다(...) 심지어 13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백인식조차 87년생으로 김광현보다 형이니... 이때문인지 대형 신인 투수가 SK에 지명되면 과연 김광현이 이번엔 막내를 탈출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될 정도(...). 14시즌에는 투수조에 92년생 박민호, 91년생 김대유가, 15시즌에는 상무에서 전역하고 돌아온 박종훈과 서진용이 꾸준히 1군 엔트리에 올라와 투수 막내 역시 벗어났다.
- 어렸을 때는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로 꼽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극도의 부진에 빠진 2011년 이후로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김광현의 영입을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다만 김광현이 등번호 47번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냐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57]
- 한국 축구의 영건 기성용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기성용의 빠른 생일로 보면 동갑 취급해도 될 정도, 서로가 닮은 꼴임을 잘 알며 의식하는 듯하다. 상대 종목이 인기를 끌 때 팬들에게 오해 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닮은 꼴에 대한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각 종목을 대표하는 영건임에도 만나본 적은 없는 모양. [58]
- 애프터스쿨의 유이와의 소개팅을
차버렸다는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유이가 애프터 스쿨 멤버가 되기 전의 일이긴 하다. 하지만, 김광현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는 것이 당시 김광현에게는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즉,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신청한 것 부터가 미스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야구인임을 생각해볼 때 유이의 언행은 상당히 의외다. 현역 선수와 루머에 엮이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없을텐데.[59]
-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과 닮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사로 떴다. 이미 김광현의 여자친구도 인정했으며 SK 선수들도 "탁구야" 하고 부르기도 하며, 이에 한술 더떠 김광현은 "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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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빡구
리에 간간히 포함되었다.
- NC 다이노스에게 유독 약하다. 등판하면 꼭 패전을 떠안고 내려갔다. 2013년에 선발 2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2014년에도 1경기 등판해 패전을 떠안았다. 2015년에는 선발 1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1승 1홀드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이 10.13(...)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60]
- 또한 kt 위즈에게도 약하다. 2015년 시즌 kt에게 2승을 기록했지만 23이닝 23실점 방어율 9.00로 NC 다이노스에 이어서 방어율이 제일 좋지 않았고 16시즌 또한 kt와의 개막전에 등판했으나 4와 2/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징크스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류현진과 같은 오른손잡이이지만 좌투수이다. 야구를 왼손으로 하는 데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서 좌투수가 된 것이라고.
- 이선희 구대성 등으로 이어져 온 좌완 일본 킬러의 대를 잇는 투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8이닝 2실점하면서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반대로 일본에게 털린게 흠이긴 하지만..
- 부모님이 안산 고잔동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했다.[61] 100승을 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면 직접 기념 떡을 해왔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 별명도 떡광현이었다고 한다.[62]
- 2남 1녀 중 장남[63]이다. 2014년 시즌 끝나고 결혼해서 2016년 현재는 1남 1녀, 두 아이의 아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거주하는 모양이다. 주변 맛집 같은 곳에 싸인이 전시된 곳도 많다.
-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구마구와 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모습도 찍힌적이 있고 리그 오브 레전드도 좋아한다고 한다. PC방 같은 곳에서도 가끔 발견되기도 했고. 그래서 페이커의 시구 당시 페이커의 팬이라고 언급이 되었다.
플레티넘이라는 카더라실제로 시구하는법도 본인이 가르쳐주기도 그래서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모으다가 전종 컴플릿을 바라볼 시점 그는 스타크래프트에 눈을 떴다고... (동창 증언)
- 이사만루2015 KBO에서는 10김광현의 구종이 쓰레기인 선수로 나왔다. 체인지업 F, 컷패스트 E, 나머지 D.
하여간 악마들
- 소속팀 모기업인 SK텔레콤 TV 광고를 간판 에이스 답게 두 번이나 출연하였다. 2008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한 번 찍었고, 2016년에는 생활플랫폼 광고를 촬영했다. * 이후 스폰서인 미즈노#s-2의 지면, 영상광고도 찍었다. [1]
뛰는 폼이 모자라보이는건 덤이다.
- 2016년에 100승을 달성한후 기념 글로브 100개를 제작해 1개당 백만원에 판매, 판매수익금 전액을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해당 글러브에는 번호가 기입되어 있으며 1번은 김광현이 실착용으로 사용한다. 여담으로 너무 비싼거 아니냐는 의견도 간혹 나오는데 위의 글러브는 미즈노 포 프로 글러브, 즉 프로 선수용으로 맞춤 제작되는 글러브로 현역 선수가 아니면 얼마를 줘도 구할수가 없는 모델이다.[64]
- 의외로 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다고 하며 위의 자선 글러브 이벤트도 본인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만약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게 된다면 구단 마케팅 직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성근의 투수혹사의 피해자이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8실점 완투패 사건이나 인터뷰에서 벌투로 100개 넘게 던졌다고 언급했던 부분 등, 2011년부터의 긴 재활과 부진이 김성근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6년 김성근의 숨겨진 실체가 드러나면서 재주목받고 있다.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7 | SK | 20 | 77 | 3 | 7 | 0 | 0 | 0.300 | 3.62 | 80 | 5 | 45 | 52 | 35 | 31 | 1.57 |
2008 | 27 | 162 | 16 (1위) | 4 | 0 | 0 | 0.800 (2위) | 2.39 (2위) | 127 | 9 | 65 | 150 (1위) | 50 | 43 | 1.17 (2위) | |
2009 | 21 | 138⅓ | 12 | 2 | 0 | 0 | 0.857 (1위) | 2.80 (1위) | 121 | 14 | 57 | 112 | 46 | 43 | 1.26 (4위) | |
2010 | 31 | 193⅔ (1위) | 17 (1위) | 7 | 0 | 0 | 0.708 (5위) | 2.37 (2위) | 153 | 13 | 89 | 183 (2위) | 56 | 51 | 1.22 (5위) | |
2011 | 17 | 74⅓ | 4 | 6 | 0 | 0 | 0.400 | 4.84 | 70 | 6 | 47 | 61 | 45 | 40 | 1.55 | |
2012 | 16 | 81⅔ | 8 | 5 | 0 | 0 | 0.615 | 4.30 | 85 | 9 | 38 | 65 | 44 | 39 | 1.48 | |
2013 | 25 | 133 | 10 | 9 | 0 | 0 | 0.526 | 4.47 | 128 | 12 | 72 | 102 | 72 | 66 | 1.47 | |
2014 | 28 | 173⅔ (5위) | 13 (4위) | 9 | 0 | 0 | 0.591 | 3.42 (2위) | 178 | 10 | 84 | 145 (5위) | 77 | 66 | 1.49 | |
2015 | 30 | 176⅔ | 14 | 6 | 0 | 1 | 0.700 (5위) | 3.72 | 173 | 19 | 69 | 160 | 86 | 73 | 1.35 | |
2016 | 27 | 137 | 11 | 8 | 0 | 1 | 0.579 | 3.88 | 139 | 17 | 47 | 116 | 68 | 59 | 1.31 | |
KBO 통산 (10시즌) | 242 | 1347⅓ | 108 | 63 | 0 | 2 | 0.632 | 3.41 | 1254 | 114 | 613 | 1146 | 579 | 511 | 1.36 |
완투, 완봉 기록 | ||
년도 | 완투 | 완봉 |
2008 | 1완투 | 1완봉 (2위) |
2009 | 1완투 | 0완봉 |
2010 | 2완투 (3위) | 1완봉 (3위) |
2011 | 1완투 | 0완봉 |
2014 | 1완투 | 0완봉 |
2015 | 1완투 | 1완봉 (2위) |
통산 | 7완투 | 3완봉 |
- 타자 기록
역대 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
2007 | SK | 1 | 0 | .000 | 0 | 0 | 0 | 0 | 1 | 0 | 0 | .000 | |
2009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000 | ||
2010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000 | ||
통산 | 3 | 2 | .000 | 0 | 0 | 0 | 0 | 1 | 0 | 0 | 0 |
- ↑ 출생 자체는 서울이지만 사실상 안산 출신으로 봐도 좋다.
- ↑ 2010학년도 건국대학교 체육교육과 수시 전형에 합격하였다. 다만 학사학위를 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다음 프로필에서는 학사가 아닌 건대 체교과로만, 네이버, KBO 프로필에서는 안산공고 졸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KBO 프로필은 데뷔 전 학력만 기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 3번 모두 SK에서 우승했다.
- ↑ 2010년까지만 해도 류현진과 함께 국내 좌완 트로이카의 한 축을 맡았는데 그 이후 시즌부터는 좀 많이 부진해서... 그러나 08, 10년도의 구위를 다시 회복한다면 다시 한 번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될지도 모르는 일. 실제로 07, 11년도에 대차게 말아먹었다. 근데 07년은 데뷔 시즌이고 11년은 그 전 시즌 직후에 아팠던 것도 있었음을 감안하자. 실제로 데뷔 시즌 후반기에는 상당히 좋은 모습이었고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아니, 2007년 전체를 놓고 본다면 2015년 현재까지도 사실상 KBO리그에서 배출한 마지막 특급신인이다. 같은 기대값을 받았던 데뷔 4년차 이현호(야구선수)가 한국시리즈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생각해보면, 데뷔한 당해 한국시리즈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절정의 두산 불방망이를 앞에 두고 7.1이닝 무실점 경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 ↑ 김광현과 같은 해인 2007년 데뷔해 마지막 순수 신인왕을 수상한 임 모씨도 있었지만, 김경문의 미친듯한 혹사와 본인의 영 좋지 않은 사생활로 임탈되어 크보를 떠났다. 이들 이후로 데뷔하는 루키들은 나성범, 구자욱, 신재영, 유희관 등 분명 상당한 수준이지만 류현진, 김광현처럼 독보적으로 리그를 평정할 정도의 활약을 보였나하면 그건 또 아닌지라. 그나마도 구자욱, 신재영, 유희관은 중고신인이다.
- ↑ 야구부가 없는 학교라 리틀야구로 야구를 시작했다.
- ↑ 그런데 거기서도 숙소 생활했다는 뒷 얘기가 있다.(...)
- ↑ 4회초에 솔로홈런을 맞으며 1점을 내주었고 김광현이 9회 말 동점홈런을 치며 연장전으로 들어갔으나, 이후 3점을 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 ↑ 98경기 127⅓ 이닝 1승 7패 6홀드 9.16
- ↑ 98경기 182이닝 3승 4패 1세이브 4.35
- ↑ 의외로 삼성에 안산공고 출신 선수가 많다. 2017년에 최형우의 보상선수로 합류한 강한울도 안산공고 출신이다.
- ↑ 이전 항목에 06년 얘기 외에 05년에 윤석민을 건너뛰고 최정을 골랐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이는 김광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전혀 아니다. 고교시절 당시 최정은 구속도 괜찮은 탑급 투수였고 이영민 타격상까지 수상한 고교 최고의 타자로, 투타 모두 윤석민보다 훨씬 뛰어났던 선수였다. 오히려 윤석민이 최정만큼 인정받지 못하던 고교시절 평가를 넘어 예상을 깨고 프로에서 대박이 터진 것이지, 당시 최정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았는데 SK가 미래의 김광현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최정이 제일 잘해서 뽑은 것. 구단은 처음부터 윤석민 생각을 한적없이 계속 최정을 원했고, 최정의 포지션에 대해서도 입단 이후 투수로 할까 타자로 할까 내부고민이 있었다. 최정 개인도 고민이 있었으나, 프로에서 투수보다는 뛰어난 타격과 강한 어깨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3루수나 유격수 같은 내야수를 원했고 상의끝에 그쪽으로 결정된 것.
- ↑ 고교시절만 비교하면 최정은 투타재능이 모두 뛰어나 윤석민, 김광현, 류현진, 이재원 등보다도 기대치가 더 높던 선수다. 반대로 고교시절 이재원 같은 경우는 류현진이랑 프로와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포수 vs 투수지만) 기대치가 비슷했다. 거기에 류현진의 수술경력에 대한 스카우터들의 부상관련 불안감이 있었고 미래 김광현에 대한 생각도 작용했던 것이다.
- ↑
이재원도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완전히 차지했기에 이것도 그렇게 후회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이건 이재원이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무조건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리그 최악의 팀에서 연평균 180이닝-평자 2.80-14승을 올려주고 300억까지 주고 떠난 에이스와 비견할 만한 선수가 과연 현 KBO에 있을까? - ↑ 이전 항목에 최정 얘기가 여전히 있었지만, 최정-윤석민의 문제는 길게 볼때 SK입장에서 땅을 칠 일이 아니다. 최정은 20대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FA이후 30대초중반에도 SK에서 활동하기로 계약했고 데뷔 첫 홈런왕까지 되며 30대에도 여전한 장타력을 보여줬지만, 윤석민은 20대 초중반의 맹활약에 비해 20대 후반 FA이전부터 구속저하가 눈에 띄게 되었고 미국에 갔다 온 뒤 이어지는 부상으로 30대부터 마무리를 하거나 선발을 하려다 이내 부상재활을 하는 등 소속팀에서 1군선수로서의 활동이 상당히 적을만큼 부진하다.
- ↑ 통산 첫 완봉승
- ↑ 완투승
- ↑ 완투승
- ↑ 통산 두번째 완봉승
- ↑ 완투승
- ↑ 통산 세번째 완봉승
- ↑ 2군으로 내려가기 전, 8월 19일 광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선발 김원형이 한타자도 책임지지 못하고, 강판당하며 두번째 투수로 김광현이 등판했는데 7이닝 4실점(3자책)으로 호투하였다. 이 날 경기는 초반에 판가름 난지라 김성근 감독이 테스트 겸 올렸다고 추후에 밝혔다.
- ↑ 포스트시즌 류현진이 갖고있는 삼진 8개다
- ↑ 이때 김광현이 밝히기로는 위 각주에 서술한 기아전이 엄청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을 던지다보니 감각이 왔고, 그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2군에서도 훈련에 매진했다고한다
- ↑ 후일 방영된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박경완이 밝히기를 '지금까지 광현이와 배터리를 짜면서 이렇게 두들겨맞은적은 처음이다'라고 회상했다. 다음에 다시 맞설 기회가 있다면 후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리드에 따라오는 투수가 얻어맞는 모습을 보는 포수 또한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 ↑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2년 연속 MVP를 노려봄직했을 정도였다.
- ↑ 마운드엔 투수 최정이 있었다(...)
- ↑ 이전 올스타는 2006년 이진영과 김재현, 2007년 김성근감독이 부임한 이후로 최초이다.
- ↑ 전국 야구팬들에게 에이스로 인정받은 것일 수도 있으나, 동부리그의 후보들이 좀 빈약했다. 동부리그 후보로는 김선우, 조정훈, 오승환등인데, 이에 비해 서부리그의 후보들은 봉중근, 윤석민, 류현진, 이현승 등으로 쟁쟁한 투수들로 이루어져있었다.
- ↑ 한 회의 실수로 두번 마운드에 올라와서 강제로 강판
- ↑ 시즌아웃 당시 2위 구톰슨 2.94, 3위 송은범 2.95.
- ↑ 10월 3일 NC 다이노스전, 개인통산 첫 홀드다.
- ↑ 183개
- ↑ 144경기라서 당연한 것 아니냐 싶겠지만, 145개를 기록한 14시즌에도 김광현은 28경기에 등판해 삼진 145개를 잡았다. 삼진 비율이 높아진 것.
- ↑ 시즌 전에 볼넷을 줄 바에야 차라리 홈런을 맞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 ↑ SK 와이번스 프랜차이즈 선수 중 최초의 100승 달성자는 김원형 코치다. 그러나 그가 이룬 100승 중의 60% 정도는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에 쌓은 승리다. SK 와이번스에 입단해서 오롯이 한 팀에서만 100승을 채운 것은 김광현이 최초다.
- ↑ 이전에도 체인지업, 포크 등 제 3구종의 장착을 시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 ↑ 실제로는 2014시즌에 처음으로 장착했다. 고교 시절에 던졌던 슬라이더는 구속이 느려서 스카우터가 커브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입단 이후 슬라이더의 구속이 오르는 바람에 '커브는 봉인하고 슬라이더를 새로 장착했다'는 오해가 퍼지고 말았다. 기사 참조
- ↑ 당장 2014년 전반기에 김광현은 커브 제구 때문에 큰 애를 먹었다. 단순히 커브를 봉인한 것이었다면 전반기 내내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 ↑ 2015년에 최고구속 155km을 기록하였다.
- ↑ 때문에 타자들이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안타로 연결시키려면 높게 제구된 실투성 슬라이더를 노려야한다.
- ↑ 그래서 김광현이 저지르는 폭투는 대부분 홈플레이트 앞에서 패대기치듯이 떨어지는 바운드볼이다. 포수 키를 넘기거나 바깥쪽으로 빠지는 폭투는 어지간하면 저지르지 않는다.
- ↑ 2012년 기준
- ↑ 사실 당시 SK의 확실한 선발은 김광현 뿐이었다.
- ↑ 부상 전 평균이닝이 거의 7이닝에 육박했다.
- ↑ 한 이닝에 두번 마운드에 올라오면 투수가 자동으로 강판된다.
- ↑ 물론 대신 평균 이닝이 넘사벽이었지만
- ↑ 본인은 입단 이후 매년 겨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2010 시즌 직후 발생한 불의의 부상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 ↑ 오히려 재활에서 투구폼을 교정해 더 강한 구위와 빠른 구속을 갖는 경우까지 생긴다.
- ↑ 대표적으로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 4회까지는 완봉은 물론이고 노히터를 노릴 수 있을정도로 엄청난 구위의 공을 뿌리다가 급격한 흔들림으로 5회에 3실점. 결국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갔다.
- ↑ 아쉬운 성적이 13승 190이닝에 3.57 이다(...)
- ↑ 다만 냉정하게 보면 이때 둘의 레벨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둘 다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김광현의 2010년은 류현진의 성적을 제외한다면 10여년간 손에 꼽히는 시즌이었으나 그 성적은 류현진의 2007년은 상회할지라도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던 2006년, 1점대 방어율을 찍었던 2010년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류현진이 다른해도 아닌 하필 그해에 역대급 성적을 찍어 역대급 콩이 되어버린 바람에...
- ↑ 최고구속 152km에 양준혁을 상대로 진짜로 3연타석 삼진을 잡았다.참고로 이 날 양준혁의 마지막 타석은 송은범에게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미친듯이 전력질주하는 눈물없이 볼수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 ↑ 실제로 이말년은 마구마구에서도 쌍방울덱 사용했다.
- ↑ 비슷한 사례로 "대물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조정훈이 뜬다. 모 롯데 팬의 김광현 목격담에 따르면 가운뎃다리가 말의 그것이라고(...) 박희수도 장난이 아니라는 목격담이 있다. 오죽하면 하반신의 중심축이 잘 잡혀서 야구를 잘 하는구나 싶었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반대로 같은 팀에 최정은 작다는(...)소문이 있다. 과거 박재상이 직접 입으로 확인사살.
- ↑ 여담이지만 한동민 등도 나오지 않았고 김광현이 부상과 재활로 엔트리에서 장기간 빠졌던 11,12 시즌에는 최정이 1군 전체 막내였다!!!
- ↑ 그야 47번은 LG의 야생마인 이상훈의 등번호이기에...
- ↑ 이에 대해서는 기성용이 펄녀와 친해서 몇 번이고 만남이 주선됐었지만 당시 SK의 고참 김재현과 이호준이 선수단에 펄녀가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이 있다.
- ↑ SK 프런트 관계자가 처음에 주선을 하였는데, 유이의 의사를 일단 김성갑 감독에게 묻고, 이를 김성갑 감독이 딸 유이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한다. 유이 본인은 아버지가 허락했다고 생각해서 소개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듯하다. 뭐 데뷔 전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릴 때라서 깊이 생각 안 하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 ↑ 16시즌 첫 맞대결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타선을 틀어막으며 통산 100승째를 기록하였다. 이를보면 어느정도 징크스를 극복한 듯
- ↑ 김광현이 분가하기 전 가족들과 살던 곳은 안산 성포동 일대의 한 아파트로, 학교와도 가까웠다.
- ↑ 선수들 사이에서 불렸던 또 다른 별명은 광팔이.
- ↑ 두 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그 중 여동생은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100승 기념 행사 날 시구도 했다.
- ↑ 만약 자신의 지인중에 현역 선수가 친구라던가, 현 프로구단 현장의 사람중에 지인이 있는 경우에는 운좋게 구할수 있기도 하다.